당구산업

당구의 서글픈 현실.... ㅠㅠ

누빌앱 2026. 6. 23. 16:39

스포츠 목록에 당구가 없습니다

제 블로그 주제가 당구이니 티스토리에 당구에 관한 글을 올리려고 카테고리를 고르던 중이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스포츠'를 눌렀습니다. 축구가 있고, 야구가 있고, 축구·야구· 농구·배구·골프가 줄지어 있더군요.  그런데 아무리 내려봐도 그 목록에 당구는 없었습니다. 스포츠 일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요.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 했습니다. 목록 하나에 모든 종목이 다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묘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당구를 즐기는 사람이 1,2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동네마다 당구장이 있고, 점심을 먹고 한 게임, 퇴근길에 한 게임, 주말에 친구들과 한 게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오래, 이렇게 가까이 즐기는 종목인데 — 스포츠 목록에는 이름 한 줄이 없었습니다.

작은 빈칸이 보여준 큰 현실

생각해 보면 그 빈칸은 우연이 아닙니다. 당구가 오랫동안 '스포츠'가 아니라 '오락'으로 여겨져 왔다는 사실의 작은 축소판이지요. 누군가에게 "주말에 뭐 했어요?" 하고 물으면, 등산을 했다거나 골프를 쳤다는 말은 운동을 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당구 쳤어요"라는 말은 어쩐지 '놀았다'는 쪽으로 기울어 들립니다. 같은 시간, 같은 땀인데 말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습니다. 제 나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당구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의 기준'이 없었습니다. 골프에는 타수가 있고, 볼링에는 에버리지가 있어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저는 얼마쯤 칩니다" 한마디로 통합니다. 그런데 당구는 그게 없습니다. 그러니 늘 아는 사람끼리, 비슷한 사람끼리만 치게 됩니다. 끼리끼리 노는 게임에는 '기록'이 쌓이지 않고, 기록이 없는 게임은 좀처럼 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장비도 그렇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자기 러닝화를 신고, 수영을 하는 사람은 자기 수경을 챙기고, 골프를 치는 사람은 자기 채를 듭니다. 그런데 당구는 당구장에 놓인 공용 큐로 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자기 장비 하나 없이 즐기는 것이 당연한 종목은, 가만 보면 당구가 거의 유일합니다. 그러니 '진지한 스포츠'보다 '가벼운 오락'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지요.

그래도 당구는 충분히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큐를 잡아 본 사람은 압니다. 당구가 얼마나 정직한 운동인지를요. 공 하나를 원하는 자리에 세우려면 각도를 읽어야 하고, 힘을 다스려야 하고, 무엇보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손끝이 떨리면 공이 떨리고, 욕심을 내면 어김없이 어긋납니다. 기하학이고, 물리이고,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연습한 만큼 정확히 늘고, 게으르면 정확히 줄어듭니다. 이보다 더 스포츠다운 게 있을까요.

 

그리고 당구만큼 동호인 폭이 넓은 운동도 없을 것입니다. 무릎이 아픈 어르신도 칠 수 있고, 이제 막 입문한 학생도 칠 수 있고, 처음 큐를 잡는 여성도 칠 수 있습니다. 비가 와도, 더워도, 추워도 즐길 수 있습니다. 나이와 체력의 벽이 가장 낮은 운동 — 그래서 어쩌면 가장 오래, 가장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이 당구입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 블로그 카테고리의 스포츠 목록에 '당구'가 당당히 한 줄로 들어가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 한 줄은 당구가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 어엿한 '스포츠'로 인정받았다는 표시일 테니까요. 1,200만이 즐기는 종목이 제 이름값을 찾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려면 결국 당구에도 누구나 믿을 수 있는 실력의 기준이 필요할 겁니다. 골프의 타수처럼, 볼링의 에버리지처럼 — 처음 만난 사람과도 한 숫자로 실력을 가늠하고, 실력이 달라도 공정하게 한 판 붙을 수 있는 그런 기준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 문제를 풀어 보려고 합니다. 이 블로그에 이미 '누빌시스템'이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둔 것도 그래서입니다.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제가 직접 매달려 있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조만간 그 해결책을 이 자리에서 하나씩 보여 드리겠습니다.

 

스포츠 목록의 그 작은 빈칸 하나가, 오랫동안 미뤄 둔 큰 숙제를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언젠가 그 칸이 채워지는 날, 오늘 이 글을 다시 꺼내 읽고 싶습니다. 그때쯤이면 "당구 쳤어요"라는 말이, 누구의 귀에든 "운동했어요"로 들리고 있을 겁니다. 그날을 앞당기는 것이 지금 제가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