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빌은 당구판의 OS다
당구판에는 OS가 없었다
당구를 치는 사람이 이 나라에 천만 명이 있다.
골프 인구의 세 배다. 동네마다 당구장이 있고, 퇴근길에 큐를 잡는 사람이 수백만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이 거대한 판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
숫자로 보면 더 이상하다. 당구장은 국내 스포츠산업 사업체의 10%가 넘는다. 단일 업종으로 가장 많은 축이다. 그런데 그 매출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다. 수는 제일 많은데, 돈은 제일 안 된다. 이런 시장을 나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저변은 최대인데, 아무도 깨우지 않은 시장.
다들 뭔가는 하고 있었다
물론 당구판에 아무도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여럿이 달려들었다.
큐스코와 빌리보드는 점수판을 만들었다. 화면에 점수를 띄우고 전적을 기록한다. PBA는 프로 리그를 만들었다. 프로 선수들의 무대를, 방송을, 스타를 만들었다. 작당 같은 곳은 당구장을 예쁘게 바꿨다. 칙칙하던 당구장을 카페처럼, 라운지처럼 만들어 젊은 사람과 여성을 불러들였다.
다들 뭔가를 잡았다. 점수판을 잡고, 리그를 잡고, 인테리어를 잡았다.
그런데 나는 이들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 이상한 걸 깨달았다. 이들 전부가 — OS 없이 돌아가는 앱이었다.
OS가 뭔지 아는가
컴퓨터에는 윈도우가, 스마트폰에는 안드로이드가 깔려 있다. 우리는 평소에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건 그 위에서 도는 앱들이다 — 카톡, 유튜브, 게임. 하지만 그 앱들은 OS가 없으면 단 한 줄도 실행되지 않는다. OS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이 그 위에서 돈다. 밑바닥이다.
금융에도 OS가 있다. 신용점수다. 대출도, 카드도, 보험도 전부 그 점수 위에서 돌아간다. 점수가 먼저 깔렸기 때문에 그 위에 온갖 금융 서비스가 얹힐 수 있었다.
OS가 없어도 어떻게든 돌리겠지만 OS가 없으면 불편하다. OS가 많아도 불편하다. 이 OS에서 돌아가게 하고, 저 OS에서도 돌아가게 해야한다. 그러니 제대로 발전할 수도, 발전시키기도 힘들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골프에는 타수가 있다. 이 단순한 숫자가 골프의 OS다. 타수가 있으니 핸디캡이 계산되고, 핸디캡이 있으니 실력이 다른 사람끼리도 내기를 하고, 그 위에 대회가 서고, 레슨 시장이 생기고, 장비 시장이 자란다. 볼링에는 쓰러진 핀이 있다. 그것도 OS다. 그런데 당구에는 — 그게 없다.
당구에 없는 단 하나
당구를 쳐 본 사람은 안다. "너 몇 치냐"고 물으면 "150 친다", "200 친다"고 답한다. 그런데 그 숫자는 어디서 왔는가? 아무도 모른다. 그냥 같이 치던 사람들이 "너 정도면 150이지" 하고 인정해준 숫자다. 옆 동네 가면 200이 되기도 하고, 고수들 사이에선 100이 되기도 한다.
당구에는 실력을 재는 절대 기준이 없다.
골프의 타수처럼,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하는 객관적인 잣대가 없다. 그래서 당구는 이상한 방식으로 굴러간다. 실력이 '서로의 인정'에 의존한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과는 게임 자체가 안 잡힌다. "그쪽 몇 치세요?" "150이요." "에이, 그게 무슨 150이에요." 이러다 판이 깨진다. 결국 아는 사람끼리만 친다. 천만 명이 치는데, 다들 자기 무리 안에서만 친다.
이게 당구판이 이 모양인 진짜 이유다. 점수판이 없어서가 아니다. 리그가 없어서가 아니다. 인테리어가 촌스러워서가 아니다. 밑바닥에 깔려야 할 OS가 없어서다. 큐스코도, PBA도, 작당도, 다들 그 없는 OS 위에서 각자의 앱을 돌리고 있었던 거다. 밑바닥이 비어 있으니, 아무리 위에 뭘 얹어도 판 전체가 커지지 못했다.
아무도 그 밑바닥을 보지 못했다. 다들 눈에 보이는 것 — 점수판, 리그, 인테리어 — 을 잡느라, 정작 그 밑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누빌은 OS를 만들기 위한 기초로 시간을 발명했다
문제는, 당구에는 만점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골프는 홀에 넣으면 끝이고, 볼링은 핀이 다 쓰러지면 끝이다. 당구는? 끝이 없다. 잘 치는 사람은 한 번 큐를 잡으면 수십 점을 몰아친다. 실력을 어디서 잘라 재야 할지, 기준점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없는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무엇으로? 시간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25분을 준다. 그 시간을 다 쓰면 게임이 끝난다. 고수든 하수든, 주어진 시간은 같다. 같은 시간, 같은 조건 위에 서야 비로소 실력이 객관적으로 드러난다. 그 25분 동안의 플레이를 AI가 스무 가지가 넘는 항목으로 뜯어본다. 그리고 하나의 숫자를 내놓는다. 나는 그걸 누빌지수라 부른다.
시간은 목적이 아니다. 시간은 도구다. 없던 기준을 세우기 위한 토대. 그 위에 세워지는 것 —
객관적인 실력의 표준 — 그게 진짜다. 그게 당구판에 없던 OS다.
OS가 깔리면
실력이 숫자가 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게임이 성립한다. 서로의 누빌지수를 보고, 그 차이만큼 핸디를 주면 되니까. "몇 치냐"로 실랑이할 필요가 없다. 숫자가 대신 말해준다.
그 위에 대회가 선다. 지금까지 당구 대회는 잘 치는 1%만의 무대였다. 하지만 객관적인 핸디가 있으면, 실력이 다른 사람들도 한 대회에서 겨룰 수 있다. 초보도, 아마추어도, 고수도.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이 1%에서 100%로 열린다.
그 위에 코치가 선다. 당구를 가르치는 국가공인 지도자가 전국에 1,779명뿐이다. 골프의 8분의 1이다. 천만 명이 치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이것뿐인 이유도, 실력을 잴 기준이 없어서다. 무엇을 얼마나 가르쳤는지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누빌지수가 그 증명을 대신한다.
점수판도, 리그도, 매칭도, 할인도 — 전부 이 OS 위에서 돈다. 남들이 잡은 것들이 실은 이 밑바닥 위에 얹혀야 제대로 작동하는 것들이었다.
아무도 안 보던 자리
나는 예순다섯이다. 개발자도 아니다. 코드 한 줄 못 짜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이걸 만들 수 있었던 건, AI 덕이다. 지난 몇 년 사이, 방대한 구상을 혼자서, 낮은 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어제까지 불가능하던 일이 오늘 가능해졌다.
그리고 하나 더 — 이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점수판을, 리그를, 인테리어를 잡느라 바빴다. 아무도 그 밑에 깔려야 할 OS를 보지 못했다. 그러니 먼저 보는 사람이, 먼저 세우는 사람이 그 자리를 갖는다.
큐스코와 빌리보드는 점수판을, PBA는 리그를, 작당은 인테리어를 잡았다. 그러나 그들은 OS 없이 돌아가는 일개 앱일 뿐이다.
나는 아무도 관심 없던 당구판의 OS를 만들기로 했다.
천만 명이 치는데 아무도 관심 없던 그 시장에, 밑바닥을 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