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 스킬링/65세 비개발자의 도전

완벽할 수 없는 것을 만들 때- '납득'이라는 더 현명한 기준

누빌앱 2026. 7. 9. 06:02

완벽을 목표하면 시작조차 못 한다 — '납득'이라는 더 현명한 기준

무언가를 만들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완벽하게 하자"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완벽을 목표하는 순간 영원히 출시하지 못한다. 오늘 시스템을 설계하다가, 나도 모르게 계속 쓰고 있던 다른 기준을 발견했다.

완벽할 수 없는 것을 만들 때

나는 당구 실력에 따라 핸디(접어주기)를 자동으로 계산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혔다 — 핸디를 100% 정확하게 매길 수 있는가?

정직한 답은 "아니오"다. 사람의 실력은 매일 다르고, 상대에 따라 다르고,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어떤 공식도 이걸 완벽하게 잡을 수 없다. 세상의 어떤 레이팅 시스템도 못 한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은 실패인가? 여기서 나는 멈칫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 애초에 목표가 '완벽'이 아니었다.

골프 핸디캡은 왜 40년을 버텼나

골프에는 핸디캡 제도가 있다. 실력이 다른 사람들이 공정하게 겨루도록 접어주는 숫자다. 이 제도가 수십 년째 굴러간다. 정확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골프 핸디캡도 오차가 꽤 있다. 그런데 아무도 폐기하자고 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다 — 사람들이 "대체로 공정하다"고 납득하기 때문이다.

핸디의 성패는 수학적 정밀도가 아니라 사회적 수용에서 갈린다. 3점이 맞는데 4점을 접어주면 사람들은 견딘다. 하지만 3점이 맞는데 15점을 접어주면 떠난다. 중요한 건 완벽한 정확도가 아니라 **"터무니없지 않은가"**다.

'납득'은 물러선 목표가 아니다

여기가 핵심이다. "완벽 대신 납득"은 타협이나 후퇴처럼 들린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다.

완벽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고, 납득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목표다.

  • 완벽을 목표하면 → 완벽은 불가능하니 → 영원히 출시하지 못한다.
  • 납득을 목표하면 → 납득은 가능하니 →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하면 나아진다.

완벽을 좇는 사람은 "아직 부족해"를 반복하며 출시를 미룬다. 납득을 목표하는 사람은 "이 정도면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하다"에서 출발해, 실제 사용자의 피드백으로 나머지를 다듬는다. 후자만이 실제로 물건을 세상에 내놓는다.

같은 기준이 곳곳에서 반복됐다

재미있는 건, 이 "납득선"이 시스템의 전혀 다른 부분들에서 똑같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핸디: 터무니없지 않으면 된다. 완벽히 공정할 필요는 없다.

실시간 승부 예측(관중에게 보여주는 승리 확률): 정확할 필요가 없다. 크게 앞선 사람을 낮은 확률로 표시하는 명백한 오류만 없으면, 나머지 틀림은 오히려 드라마가 된다. "80%였는데 졌네"는 실패가 아니라 "80%를 뒤집은 대역전"이다.

초기 데이터가 없을 때의 추정: 첫 판부터 정확할 순 없다. "터무니없지 않은 출발점"이면 충분하고, 판이 쌓이며 정확해진다.

 

표면적으로 이 셋은 다르다. 핸디는 틀리면 불공정이고, 관중 예측은 틀리면 재미고, 초기 추정은 틀리면 부정확이다. 그런데 판정 기준은 하나로 같다 — 사람들이 납득하는가.

그래서 무엇이 바뀌나

"완벽이 아니라 납득"을 기준으로 삼으면 세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 출시할 수 있다. 완벽을 기다리지 않으니 시작점이 생긴다.

둘째, 과잉설계를 멈춘다. 납득선만 넘으면 그 위의 정밀도는 대부분 헛수고다. 관중 예측을 소수점까지 정확하게 만들어봐야 재미에 기여하지 않는다. 그 노력을 다른 데 쓰는 게 낫다.

셋째, 시스템이 스스로 자란다. 납득 가능한 수준으로 시작하면 사람들이 쓰고, 쓰면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나머지를 다듬는다. 완벽을 기다렸다면 이 선순환 자체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만들다 "완벽하지 않아서" 못 내놓고 있다면, 질문을 바꿔보라. "이게 완벽한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 정도면 납득할까?"

 

완벽은 출시를 막는 핑계가 되기 쉽지만, 납득은 출시의 문을 연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 불완전한 것만이 피드백을 받아 완전해질 기회를 얻는다. 책상 위에서 완벽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히 완벽해지지 못한다.

완벽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도착지는 납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