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산업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 안되려면...

누빌앱 2026. 7. 16. 08:01

3억짜리 문서에 '핸디'가 한 번도 안 나옵니다

당구를 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냐 물으면 답은 거의 하나로 모입니다. 그런데 그 낱말이 없었습니다.


지난 4월, 대한당구연맹이 「K-Billiards 디비전 플랫폼 2.0 구축 사업」 제안요청서를 냈습니다. 사업비 3억 원, 올해 12월 완료 목표. 흩어진 시스템을 하나로 모으고, 대회 운영을 자동화하고, 당구장에서 개인끼리 친 판까지 공식 랭킹에 넣겠다는 계획입니다.

 

좋은 방향입니다. 누빌앱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AI에게 분석을 시켰습니다. AI가 본문 12만 자를 다 읽고 분석 보고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핸디'라는 단어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1. 없는 낱말

핸디 — 0회

동호인 당구에서 핸디는 곁가지가 아닙니다. 게임이 성립하는 조건입니다.

30점 치는 사람과 15점 치는 사람이 붙으려면 핸디가 있어야 합니다. 핸디가 없으면 게임 자체가 안 잡힙니다. 그래서 다들 아는 사람끼리만 칩니다. 서로 실력을 아니까 알아서 점수를 맞춰주는 거죠.

 

이 '끼리끼리' 구조가 당구가 더 크지 못한 뿌리라고 저는 봅니다. 낯선 사람과 못 치니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성도, 청소년도, 시니어도 못 들어옵니다.

 

그런데 3억짜리 프로젝트 문서에 이 낱말이 한 번도 안 나옵니다.

「등급」은 14번 나옵니다. 그래서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나오는 등급 무엇의 등급인가

회원 등급 및 포인트 시스템 멤버십 등급
심판 배정 — 자격 및 등급 기반 심판 자격
시설 등급 및 인증 관리 당구장 등급
실력 등급 없음

 

당구장에서 개인끼리 친 판을 공식 랭킹에 넣겠다고 해놓고, 실력이 다른 두 사람을 어떻게 공정하게 붙일지에 대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2. 데이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를 걷어내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럼 데이터를 더 모으면 되지 않냐"고들 합니다.

 

데이터는 이미 있습니다. 애버리지도 이닝도 하이런도 지금 다 잡힙니다. 연맹 문서에도 "승률, 평균 득점, 경기 수 등 주요 지표 분석"이 요구사항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기록을 모으고 통합하는 일은 이번 사업으로 더 잘될 겁니다.

 

문제는 그 숫자들이 서로 비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구엔 만점이 없습니다. 골프의 타수, 볼링의 핀에 해당하는 절대 기준이 없어요. 게임마다 목표 점수가 다르고, 이닝 수가 다르고, 조건이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이 동네에선 20점, 저 동네에선 15점입니다.

 

조건이 제각각인 숫자는 아무리 많이 모아도 잣대가 안 됩니다.

통합·자동화·자산화는 흩어진 것을 모으는 일입니다. 잣대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재는 방식이 그대로니까요.

3. 그래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합니다

기존 방식 위에서 아무리 잘 정리해도 안 됩니다

비교 불가능한 숫자는 잘 정리한다고 비교 가능해지지 않습니다. 이건 예산 문제가 아니라 발상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게임 방식 자체를 바꿨습니다.

 

목표 점수를 채우면 이기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25분을 다 쓰면 게임이 끝납니다.

같은 시간, 같은 조건. 그러니 비로소 숫자가 서로 비교됩니다. 그 위에서 20여 항목의 데이터가 나오고, 그 데이터로 실력 점수와 핸디가 나옵니다. 두 사람의 승률이 50%가 되도록 핸디가 자동으로 붙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공정한 게임이 성립합니다.

시간은 목적이 아니라 토대입니다. 당구에 없던 절대 기준을 만들려고 넣은 장치죠.

4. 연맹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발주 문서는 그런 걸 담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발주 문서는 검수할 수 있는 것을 적는 자리입니다. "결제 기능"은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이 됩니다. 그래서 「결제」가 40번 나옵니다. 반면 「재미」는 검수가 안 됩니다. 그래서 0번 나옵니다 — 연맹의 핵심 가치가 "당구는 재미있다"인데도요.

 

종목의 게임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주서에 적을 수 있는 항목이 아닙니다. 지금 있는 것을 더 잘 정리하는 일까지가 그 문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

그러니 이건 연맹이 게을러서도, 실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문서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5. 순서가 반대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연맹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판단까지 내렸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다만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까지는 짚지 못한 채, 지금 있는 것을 더 잘 정리하는 쪽으로 사업이 짜였습니다. 플랫폼이 먼저 있고 해결책이 그 안에 담기는 순서죠.

 

저는 반대로 갔습니다.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를 먼저 짚었습니다. 당구에 절대 기준이 없다는 것. 그 하나를 바꾸려고 게임 방식을 다시 설계했고, 그 위에 플랫폼을 올렸습니다. 해결책이 먼저 있고 플랫폼이 그다음입니다.

 

연맹의 답은 당구를 잘 운영하기 위한 것이고, 제 답은 당구를 제대로 재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다만 당구 치는 사람이 매일 아파하는 지점 — 핸디 — 에 놓인 답은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65세이고 개발자가 아닙니다. AI와 씨름하며 누빌이라는 앱을 만들고 있습니다.

3억이 있으면 좋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구 업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돈이 아니라 발상에서 나옵니다.

 

여러분은 당구에서 뭐가 제일 불편하신가요. 저는 여전히 핸디라고 봅니다.